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つぶやき:광화문 광장

8월 12일부터 18일까지 한국에 다녀왔다. 서울은 생각했던 것보다 시원했다. 시원하다 못해 15일 밤은 추워서 전기장판을 켜고 잤다. 입추가 지나자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졌다고 했다. 매년 이맘 때면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올 여름 서울에는 장마철에 비가 사흘밖에 내리지 않아 땅이 딱딱하게 굳어 매미가 지상으로 나오지 못했을 거라고들 했다.

나의 일정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기간(14일-18일)과 겹쳤다. 12일 김포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안국동으로 가면서 보니, 광화문 광장은 16일에 있을 시복식(諡福式 가토릭에서 순교자들에게 사후에 복자(福子)로 추대하는 것)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광화문 광장에 들리리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그런데 원래 16일에 예정되었던 철도여행이 취소되어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 광화문 광장을 지나치게 되었다. 4시 반쯤이었는데 행사는 다 끝나고 사람들이 횡단보도 옆에 텐트를 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친구에게 물으니, 세월호 유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위해 단식하고 있는 장소라고 했다. (아, 나는 단식 장소가 시청 앞인 줄로만 알았다.)

나는 다가다 서명을 하고 노란 리본을 받았다. 영화 시작까지는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서 광화문 광장을 이곳저곳 서성였다. 다시 보니, 거기에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고 한 가운데에는 세종대왕의 동상이 있었다. 권력의 거리였다. 광장 한편에는 세월호 참사를 그린 시와 그림이 길게 붙어 있었다. 4월 16일 이후의 유가족들을 뉴스가 아니라 가까이서 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그날 그 자리에서 프란시스코 교황이 그 앞을 지나다 차에서 내려 34일째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단식하고 있는 유가족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었다. 교황의 가슴에는 유가족이 건낸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며 방한 기간 내내 세월호 유가족들을 챙겼다고 한다. 노란 리본을 내내 달고 있었던 이유에 대해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날 본 영화 <그 사람, 추기경>은  2009년 2월에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에 관한 기록영화였다. 엄중하던 군사독재 시절 큰 힘이 되셨던 분, 낮은 곳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보여 주신 분,  노쇠한 몸으로 병마와 싸우면서도 끊임없이 기도하시던 분. 관람객은 열댓 명밖에 없어 썰렁했으나 <그 사람>의 메시지는 강렬하고 감동적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또 광화문 광장에 들렀다. 천막이 제대로 쳐지고 단식하는 분들도 다 모여 있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삼천 배를 하고 있었다. 백팔배라고 상관없다고 했다. 국회에서 진상규명을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특별법을 합의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그 옆에서 조금 서 있다가 발길을 돌렸다.

많은 생각을 안고 일본에 돌아오니, 여전히 땡볕 더위에 새벽부터 메미 우는 소리가 요란하다.

2014년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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コメント

선생님의 글에서 제가 느낀 것은 일본에서는 이미 지난 뉴스가 된 감이 있는 세월호 사건이지만 한국은 아직도 그 슬픔속에 놓여 있다는 현실입니다. 비록 일본에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 사건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저도 오사카 영사관에 조문을 다녀왔었어요. 눈앞에서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루빨리 진상이 규명되고 비상시에 조직이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그런 대책이 세워졌으면 좋겠어요.

投稿: 슬리피 | 2014年8月22日 (金) 01時44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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