カテゴリー「韓国語の資料(新聞など)」の86件の記事

韓国語の資料:[우리말 톺아보기] 아저씨

출처 한국일보인터넷판http://www.hankookilbo.com/v/f62ee09d27b84189b04077617953a3c4

뜻이 하나인 낱말도 자주 쓰이다 보면 이런저런 언어 환경의 영향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이렇게 되면 확장된 의미와 원래의 의미를 구별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확장된 의미가 원래의 의미처럼 행세할 수도 있다.

그런 말 중 하나가 ‘아저씨’다. [큰사전](1957)에는 ‘아저씨’가 “부모와 한 항렬되는 사내”로 풀이되어 있다. 그런데 [새우리말큰사전](1974)에 뜻 하나가 추가된다. “친척 관계가 없는 부모와 같은 또래의 ‘젊은 남자’에 대하여 주로 어린이들이 정답게 부르는 말”. ‘아저씨’의 의미가 친족 명칭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다. 그 이후 사전에선 ‘어린아이의 말’과 ‘젊은’이란 설명이 빠진다. 결국 [고려대한국어대사전](2009)에는 “혈연관계가 없는 남자 어른을 친근하게 이르는 말”이 ‘아저씨’의 첫 번째 뜻으로 기록되기에 이른다. ‘아저씨’가 나이든 남자를 예사로이 부르는 말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저씨’는 실질적으로 친족명에서 이탈한다. 아저씨를 ‘당숙’으로 부르다 보니 나이 차가 적은 아저씨를 부르는 말인 ‘아재’도 자리를 잃었다.

친족명에서 이탈한 ‘아저씨’의 추락은 가파르다. 이젠 남자 어른을 ‘아저씨’로 부르는 것조차 망설여지고, ‘아재’는 ‘아재 개그’나 ‘아재 취향’ 등의 말 속에서나 찾을 수 있다. ‘나이 들고 뒤떨어지고 뻔뻔한 남자’의 의미에까지 근접하는 ‘아저씨’의 추락 속도는 그 대응어인 ‘아주머니’를 앞지른다. 이 상황에서 등장한 ‘개저씨’(몰지각한 아저씨). 그렇다면 이제 ‘아저씨’는 부정적 의미를 ‘개저씨’에게 넘길 수 있을까? 그러나 ‘개저씨’를 부름말로 쓸 수는 없으니 ‘아저씨’는 당분간 지금의 ‘아저씨’일 수밖에 없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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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語の資料:[정동칼럼] 다시, 마음속 세월호를 길어올리며/박원호

출처 경향닷컴 2016. 12. 27

초현실적인 한 해가 가고 있다.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고 그곳에서 동료시민들을 발견하였다. 시민성은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켰고, 소문과 짐작으로만 떠돌던 청와대 주변의 무능과 비행의 철갑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역사는 아마 우리가 겪은 한 해를 한국에서 시민들이 승리한 결정적인 장면으로 기록할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대견하고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러나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물론 몇몇 범죄자들은 감옥에 갈 것이고, 조만간 혹은 언젠가 정권이 바뀔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을 갈아치우고 헌법을 다시 쓰며 몇몇 잡범들이 감옥에 간다고 해서 더 좋은 세상이 오지 않을 것임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여전히 새해에도, 우리는 어제의 그 옷을 입고 어제의 그 전철을 탄 채, 어제의 그 스마트폰을 외로이 들여다보면서 어디론가 바뀌지 않는 고단한 삶을 버티러 바삐 움직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단한 삶의 일상성만큼이나 고집스레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20대의 대학생인 용혜인씨는 지난 11월 초 검찰로부터 징역 2년을 구형받고 이제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 2014년 5월18일, 추모 침묵 행진을 제안하고 주최자로서 경찰에 사전 신고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신고된 시간과 장소를 벗어났다고 주장하는 검찰은 용씨에게 해당 집회뿐 아니라 ‘단순 가담’한 여러 집회와 관련된 혐의까지 덧붙여, 그 이름도 친숙한 ‘집시법’과 최고법정형이 10년에 이르는 ‘일반교통방해죄’로 기소하였다. 나는 검찰이 광장을 뒤덮은 촛불집회 참여자들은 왜 기소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용씨는 다만 우리보다 2년 반 먼저 광화문광장에 도착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물론 몇몇 범죄자들은 감옥에 갈 것이고, 조만간 혹은 언젠가 정권이 바뀔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을 갈아치우고 헌법을 다시 쓰며 몇몇 잡범들이 감옥에 간다고 해서 더 좋은 세상이 오지 않을 것임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여전히 새해에도, 우리는 어제의 그 옷을 입고 어제의 그 전철을 탄 채, 어제의 그 스마트폰을 외로이 들여다보면서 어디론가 바뀌지 않는 고단한 삶을 버티러 바삐 움직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추모 침묵 시위에서 손에 들었던 것은 국화 한 송이와 ‘가만히 있으라’는 팻말이었다. 그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또 무엇이 있었을까. 그 슬픔과 안타까움과 추모의 마음이 지금도 그대로인 것처럼, 세월호 또한 여전히 같은 장소에 침몰해 있으며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종일관 변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 국가의 끝을 알 수 없는 무능과 실패라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두 개의 질문. 과연 침몰의 원인이 무엇이며 왜 정부는 인명구조에 실패했는가? 정부는 어느 질문에 대해서도 시민과 유가족에게 가장 기본적인 것을 알리고 납득시키는 데 실패하였다. 실패하였을 뿐만 아니라 방해하였다. 방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은폐하였다. 

어렵사리 구성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은 정부에 의해 철저히 외면당했고 무력화된 채 종료됐으며, 남겨진 기록조차 국가기록원에 봉인될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는 필요한 정보를 제때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고 의혹만 늘려갔다. 그저께 인터넷에 개봉된, 한 ‘네티즌’의 개인적 자료 수집과 연구를 토대로 재해석된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8시간49분짜리 비디오에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높은 관심을 보인 사실은 역설적으로 우리 정부의 실패를 보여준다. 그 비디오가 제기하는 가설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정보만 제공되었다면 얼마든지 기각할 수 있는 가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정부가 여전히 귀를 열어 듣지 않으려 하고, 여전히 추모의 마음과 슬픔조차 재판정에서 기소하고 처벌하려 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 

2016년이, 그리고 세월호 1000일이 우리에게 준 교훈이 있다면 세상은 가만히 있으면 조금도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미래를 재보지 않고도 우리가 그냥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사실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용씨의 최후진술은 의미심장하다. “누군가 저에게 후회하냐는 질문을 한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할 것 같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것이 살아남은 사람의 책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광장에 사람들이 모였던 이유는 세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도,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도 아니었고, 다만 살아남은 사람들의 뒤늦지만 미안함의 몫이었던 것 같다. 광장에는 그런 사람들이 까맣게 몰려나와 있었고 낯선 이들이 말 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여전히 새해에도 우리는 어제의 그 옷을 입고 어제의 그 전철을 탄 채, 어제의 그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어디론가 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새해에는 그런 삶의 여정이 조금은 덜 외로울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짐진 채 광장을 천천히 함께 걸었던 이웃들이 어디에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팽목항의 어두운 바다에서, 그리고 우리 마음의 심연에서 세월호를 길어올리게 될 봄이 저만치서 뚜벅뚜벅 오고 있다.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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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語の資料:[우리말 톹아보기] 사이시옷 적는 법

출처 한국일보 http://www.hankookilbo.com/v/5417dc5854d5469fb04f933978472734

사이시옷은 다음의 네 가지 원칙에 따라 적는다.

첫째, 사이시옷은 ‘촛불(초+불), 나뭇잎(나무+잎)’처럼 명사와 명사가 합쳐질 때만 쓸 수 있다.

‘해님’일까, ‘햇님’일까? ‘해’는 명사지만 ‘-님’은 접미사이므로 사이시옷이 나타날 환경이 아니다. ‘해님’이 맞다.

둘째, 사이시옷은 두 말 사이에서 소리가 덧나거나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변할 때만 쓸 수 있다. ‘위’와 ‘마을’이 합쳐지면 /ㄴ/이 덧나 [윈마을]이 된다. 그래서 ‘윗마을’로 적는 것이다. ‘위’와 ‘동네’가 합쳐질 때는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변해 [위똥네]가 된다. 그래서 ‘윗동네’로 적는 것이다. ‘위쪽, 위층’의 경우, 별다른 소리의 변화가 없으므로 사이시옷을 적을 수 없다. ‘윗쪽, 윗층’은 잘못이다. 이처럼 사이시옷은 소리와 직접 연관되어 있으므로 평소에 표준 발음을 잘 익혀 두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사이시옷은 두 말 가운데 순우리말이 하나 이상 있고 외래어가 없을 때에만 쓸 수 있다. ‘소수점(小數點)’은 [--쩜]으로 소리가 나므로 사이시옷을 쓸 만한 환경이지만 순전한 한자어이므로 사이시옷을 쓸 수 없다. ‘꼭짓점(--點)’은 [--쩜]으로 소리가 나고 ‘꼭지’가 순우리말이므로 사이시옷을 써야 한다. ‘만둣국’이나 ‘우윳빛’도 같은 이유로 사이시옷을 쓴다. ‘핑크빛(pink-)’도 뒷말이 된소리로 바뀌지만 ‘핑크’가 외래어이기 때문에 사이시옷을 쓸 수 없는 것이다.

끝으로, ‘곳간, 셋방, 숫자, 찻간, 툇간, 횟수’는 순전한 한자어이지만 예외적으로 사이시옷을 적도록 하고 있다. 예외는 이 6개에 한정되므로 ‘전세방’이나 ‘기차간’을 ‘*전셋방’이나 ‘*기찻간’으로 적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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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語の資料:[삶과 문화] 너무 늦게 깨달은 크고 중한 대가

출처 한국일보 http://www.hankookilbo.com/v/05c7822660924fe0a1f05b032d582190

등학교 3학년 초였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호명하셨다. 남자 여섯, 여자 여섯. 할 이야기가 있으니 수업 끝나고 남으라셨다.

천둥벌거숭이 촌놈들이지만 웬만한 세상 이치는 가늠할 줄 알았다. 선생님은 공부가 처지는 남자애들을 여자애들에게 맡길 심산이셨다. 다른 친구들이 교실 밖으로 나간 뒤 선생님이 열두 명을 앞으로 불러모았다. “남자 여섯에 여자 여섯이니까 각자 마음 맞는 친구끼리 짝꿍을 만들어보자.” 이웃 동네 혹은 같은 분단 친구끼리 우리는 짝을 지었다. “자, 이제부터 짝꿍들은 서로의 가디언, 즉 수호천사가 되는 거야. 언제 어디서든 서로가 서로를 지키고 보호하는 천사가 되는 거지.”

‘나머지공부’라든가 ‘보충학습’ 같은 말 대신 선생님은 ‘가디언’이라는 생경한 이름을 우리에게 붙여주셨다. 부족한 친구를 돕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수호천사가 되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 말이 전하는 느낌이 묘하게 좋았다. 아이들은 웃고 떠들며 각자의 가디언과 교실 안에 자리 잡거나 플라타너스 아래 벤치로 갔다.

투실투실 성격 좋고 달리기 잘하던 내 가디언은 한글을 깨치지 못하고 있었다. 운동장 옆 공작대로 가디언을 데리고 간 나는 언니들이 내게 했던 방식대로 글자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자음접변이나 구개음화 같은 문법용어는 아직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어린 우리가 한글 쓰기와 읽기를 배우고 가르치는 원리는 매한가지였다. 신기하게도 내 가디언은 그렇게 어려워하던 한글 맞춤법 원리를 며칠 만에 이해하기 시작했다. 부족한 공부를 채워갈수록 가디언들끼리 몰려다니며 노는 시간은 많아졌다. 학교 텃밭에서 여섯 팀이 완두콩 따기 시합을 하고, 목공소 하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가 나뭇결 따라 대패질하는 법을 배웠다. 손끝이 여문 내 가디언은 새총과 활을 참 잘 만들었다. 아무리 배워도 그 아이만큼 멋지지는 않았지만 나무가 부러지지 않게 구부려 탄력 좋은 활시위 만드는 법, 고기잡이용 작살 만드는 법을 배웠다. 좀 더 나중에 펑크 난 자전거 튜브 때우고 갈아 끼는 요령을 알려준 것도 내 가디언이었다.

그해 여름방학 때 가디언 친구들이 우르르 놀러 왔다. 참외밭 원두막에 있는 우리에게 할머니는 강낭콩 듬뿍 넣은 개떡을 해주시며 뭐가 그리 좋으신지 연신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희들이 다 동무고 수호천사라고? 아무렴, 동무는 다 좋은 거야.” “공부 못하는 꼴등 이래 두요?” 내 가디언이 싱글거리며 물었을 때 할머니는 대답하셨다. “그렇고말고 곰보 째보 오줌싸개 똥싸개 부자 빈자, 서로 돕고 지켜주며 살아가는 게 진짜 세상 사는 맛이지.” 잠시 낯빛이 어두워진 할머니가 말을 보탰다. “조심해야 할 부류가 있기는 하다만. 사람 귀한 거 모르고 함부로 업신여기는 인간. 그런 종자들은 인두겁만 썼지 실은 개돼지만도 못한 금수란다.” 옥수수와 참외와 개떡을 먹으며 우리는 까르르 웃었다. 선생님과 할머니와 친구가 곁에 있는 한 금수 따위 두렵지 않았다.

벗과 어른들이 수호천사처럼 겹겹이 둘러싼 이 세상은 안전하다는 생각. 돌아보면 그 믿음에 지탱해 성장했다. 사회에 나와 가끔 ‘돼먹지 못한 종자’와 마주쳤지만 외면하면 별 탈 없으리라 여겼다. 그게 얼마나 큰 비겁함이고 죄였는지 요즘 뼈아프게 깨닫는다. 사람 도리 배울 겨를조차 없이 세상 우습게 알고 속이는 재주 용케 익힌 ‘개돼지만도 못한 종자들’이 너무 많은 걸 무너뜨렸다. 울타리를 허물고 장독대를 깨고 가축우리를 부수고 아이들이 뛰놀아야 할 방에 쳐들어와 야수의 정글로 만들기까지, 어른이 된 우리는 무얼 했던가. 옛날 선생님과 할머니의 가르침을 올곧게 지키지 못했다. 나와 내 벗과 아이들을 위해 수호천사가 되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대가가 크다. 자고 나면 툭툭 불거지는 사건들을 보며 분노보다 자책이 앞서는 건 그 때문이다.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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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語の資料:[한국에 살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출처 한국일보 인터넷판
http://www.hankookilbo.com/v/53c711a6bfc84a2db953ba0caa34a4a7

한국은 노는 날이 적다. 특히 프랑스와 비교하면 확실히 그렇다. 그런데 올 5월 노는 날이 많았다. 6일이 임시공휴일로 결정되면서 대부분 국민이 4일간 쉬었다. 연휴는 어린이날로 시작하여 어버이날로 끝났다. 프랑스에는 5월이면 어머니날이 있고 6월 이면 따로 아버지날이 있지만 어린이날은 없다. 우리 문화에서는 아이들을 기쁘게 하는 날은 크리스마스다. 평소 애들에게 돈을 많이 쓰는 것이 교육상 좋지 않다는 사 고방식 때문에 비싼 선물을 부모님이 직접 해주는 것보다 산타클로스가 대신 주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한국은 다르다. 일년 내내 수시로 선물을 주고받는다. 어른보다 아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이 많이 가는 것 같다.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이다. 아이는 자신의 분신이며 순수해 사랑을 많이 줘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가족 모임을 할 때도 아이가 있으면 모두 아이들에게 신경을 쓴다. 이 세상에 아이밖에 없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프랑스에서 비슷한 모임이 열린다면 주로 어른 위주로 대화가 이루어진다. 맨 처음 아이를 보고 귀엽다든지 누구를 닮았다든지 그런 말로 잠시 대화하지만 곧 평상시처 럼 정치나 문화 예술에 사회 전반에 대한 대화를 하느라고 아이에 대한 대화는 바로 멀어진다. 그러다 밤이 되어 “늦었다, 집에 가야 돼”라는 말이 나오면 대화를 멈추고 함께 자리를 뜬다. 아이는 규칙적으로 재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인사하고 다들 헤어진다. 한국에서처럼 늦게까지 아이를 놀게 하고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를 일찍 재우지 않는 부모를 보면 무책임한 부모로 여길 정도다.

프랑스 사람은 아이가 밥을 먹는 예절도 중요시한다. 아이가 배가 고플 때 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밥 먹을 시간이 돼야 밥을 준다. 그뿐만 아니라 제대로 식탁에 앉아서 식사가 끝날 때까지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있게 한다. 한국에서는 왔다 갔 다 하는 아이에게 엄마가 쫓아다니며 밥 떠먹이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먹어야 산다’라는 생각 때문에 음식을 어떤 방법으로라도 입에 넣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아이가 바로 앉아 먹기 싫어하면 밥을 안 줘 버릇을 고쳐야 하고, 한 끼쯤 굶 는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왜 따라다니며 밥을 먹이는지 프랑스사람으로서 이해하기 쉽지 않다. 어머니도 힘들고 아이에게도 좋지 않다. 아이가 원하면 식사시간이 아닐 때도 맛있는 것들을 사주고 군것질을 허락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아이가 옆에 서 사달라고 떼를 써도 사주지 않는 것이 전통적인 프랑스 교육방식이며 아이에 대 한 기본적인 가정교육이다. 엄마가 한번 거절하면 끝이다. 그렇게 교육을 함으로써 프랑스 아이들은 어렸을 적부터 인내심과 배려를 배우고 이세상 모든 것이 자기 마 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된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괜 히 생긴 말이 아니다.

그런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부모와 자식, 가족 간 대화 부족이다. 얼마 전에 우리 집 앞산에서 어떤 엄마와 여섯살쯤 되는 여자아이가 놀고 있었다. 아이가 엄마한테 “개미한테 과자 좀 줄까?”라고 물었다. 엄마는 한마디로 “주지 마”라고 답했다. 나는 그걸 보며 엄마가 아이에게 짧은 대화라도 왜 주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 설명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 아이는 개미에게 먹이를 줘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인데, 엄마가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한마디로 거절하는 것이 교육상 별로 좋지 않게 느껴 졌다. 현대 사회에서 마음의 여유가 많이 없어서 그럴 테지만 아이들이랑 작은 일상 에 관해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 이들에 대한 마음 여유! 모든 사람에 대한 여유!

(마틴 프로스트 전 파리7대 한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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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語の資料:[여적] 오바마의 쿠바 방문

출처  경향닷컴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3212105305&code=990201

30대 초반의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 혁명군은 바티스타 독재정권의 대대적인 군사작전에 맞서 차곡차곡 승리를 쌓아갔다. 가난한 농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쿠바 혁명군은 1959년 1월 혁명에 성공했다. 한때 세계 젊은이들의 심장을 뛰게 했던 피델 카스트로는 지독한 반미주의자였다. 미국 플로리다 해안에서 약 145㎞ 떨어진 쿠바에서는 혁명 성공 후 미국 기업가들의 재산이 몰수됐고 양국 관계는 1961년 끊겼다. 쿠바와 단교한 미국 대통령이 바로 존 F 케네디였다.

‘검은 케네디’로 불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 역사적인 쿠바 방문길에 나섰다. 오바마는 진보적 이미지의 케네디를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꼽는다. 케네디가(家)도 오바마의 적극적 후원세력이었다. 오바마는 2013년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주일 대사에 케네디의 장녀인 캐롤라인 케네디를 기용했다. 이런 오바마가 임기 마지막 해에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88년 만에 쿠바를 방문한 것이다. 미주 대륙에 남아있던 마지막 냉전구도를 깨기 위한 결단으로도 평가되나 쿠바의 자생적인 변화를 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피델 카스트로는 2006년 장 출혈로 건강이 급속히 악화하자 혁명동지이자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권력을 넘기기 시작했다. 오바마에게 레드 카펫을 깔아준 라울 카스트로는 경제적 실리를 위해 적성국인 미국과 수교할 정도로 실용주의적 면모를 발휘했다.

‘역사에 갇혀 있지 않겠다’는 오바마의 쿠바 방문이지만 오바마와 피델 카스트로 간 만남은 예정돼 있지 않다. 전설적인 혁명투사 체 게바라와 공산주의 이념을 자신에게 소개했던 동생의 대미 접근을 외면한 것인지, 오바마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은 것인지 자세한 속사정은 알 수 없다. 혹시 피델 카스트로가 영원한 반미주의자로 역사책에 기록되기를 희망했던 것은 아닐까. 오바마의 쿠바 방문에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그래도 미국과 북한을 바라보면 미국과 쿠바 관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진전이다. 1960년 수교한 북한과 쿠바는 가장 가까운 사회주의 우방국가다. 미국과 쿠바는 서로 ‘적과의 악수’를 청했건만 미국과 북한 간 악수는 언제쯤 볼 수 있는 것일까. (오관철 논설위원)(2016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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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語の資料: [특파원칼럼] 전략은 따뜻해야 한다

출처 한겨레신문 인터넷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25172.html?_ns=r2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했다.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북한이 정말 수소폭탄 실험을 했는지, 추가 제재를 받을지, 주식시장은 어떻게 될지 등으로 쏠릴 것이다. 일본과 어이없는 군 위안부 타결을 해놓고 국내 반발로 노심초사하던 박근혜 정부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강경한 발언을 쏟아놓을수록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올라갈 것이다. 이번에도, 남북의 적대적 공생은 유감없이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그렇게, 위안부 문제는 다시 역사의 뒤안길에 쓸쓸하게 묻혀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위안부 문제 타결을 둘러싼 박근혜 정부의 접근 방식에서 번져나오던 냉기에 대해선 다시 한번 짚어보고 싶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특보와 통일부 장관을 지낸 임동원 특보를 신문사 선배들과 함께 송년회에서 뵌 적이 있다. 아마도 그가 현직에서 은퇴한 지 5년 정도 흐른 2007년 겨울쯤이었을 것이다. 그의 이름 앞에 늘 붙어다니던 ‘전략가’, ‘책사’라는 호칭 때문에 그가 냉혈한일 것으로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그의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산가족 문제와 북한의 식량난을 거론하면서 눈에 살짝 이슬이 맺혔던 모습은 잊을 수 없다. 한 통일부 관리는 진정한 전략가는 앞을 내다보는 책략과 따뜻함을 함께 가져야 한다는 것을, 임 특보한테 배웠다고 고백했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문제 협상 과정을 지켜보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약간의 따뜻함이라도 가지고 있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피해자가 수용할 수 있는 안이어야 한다’며 3년 동안 일본을 밀어붙일 때만 해도 조금은 진정성이 있는 것으로 믿고 싶었다. 주변의 참모들도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얘기했다. 하지만 ‘12·28 합의’를 보면서 역사의 가장 약자였던 할머니들에 대해 조그만 애정이라도 있었으면 이런 합의에 도장을 찍어줬을까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란 문구 때문만은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한다’는 문구를 보면,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전시하에서의 보편적인 여성 인권의 문제로 보지 않았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냥 한-일 간의 ‘중요한’ 외교 현안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1990년대 코소보 내전, 시에라리온 내전, 르완다 내전에서 자행됐던 수많은 여성 인권 유린에 대해 한·일 정부는 말할 자격이 없다.

미국 워싱턴의 외교안보 전략가들도 미래를 위해 과거의 문제는 옆으로 치워놓자고 공공연히 얘기해왔다. 이 때문에, 이번 한-일 간 위안부 타결에 대해서도 기다렸다는 듯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논평을 내놨다. 이른바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일’ 안보협력을 위해 ‘걸림돌이 제거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 전략가들의 가슴에서 약자에 대한 따뜻함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역설적으로, 이번 위안부 사태를 계기로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 정책이 왜 종종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미국의 그늘을 보게 된다.

외교적 협상이 일방의 승리로 끝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점을 인정한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는 상대국 내부의 정치적 반발을 불러 결국은 합의 자체가 깨지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상력이 불리한 국가가 막판에 힘에 밀려 수용하게 되는 ‘옥쇄전략’을 택한 이번 합의는 반집승도 아닐뿐더러, 역사의 약자에 대한 따뜻함이 없다는 점에서 진정한 전략도, 진정한 합의도 아니다.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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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語の資料:[임의진의 시골편지] 나뭇잎 시인

출처 경향닷컴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0212029415&code=990100&s_code=ao082

산은 잎들을 버리고 텅 비어 가네. 우왕 이리 눈부실 수가. 바라보다가는 눈이 시려서라도 눈물이 나지. 은빛 자작나무숲, 건너편은 넓은 잎사귀의 은백양나무숲. 산은 단풍으로 붉고 골짜기는 은빛으로 출렁거리네. 이달 또 다음달 저 숲의 나뭇잎들은 대부분 사라지겠지. 나는 나뭇잎의 소원을 알고 있다네. “아, 나뭇잎이 대지 위에 떨어질 때 사람이 될 것을 소원하며 내 배를 부드럽게 스치고 갔네.” 몽골 다르항이 고향인 유목민의 딸 롭상로르찌 을지터그스의 시. 여자의 배를 스쳐간 나뭇잎들은 사람으로 태어나겠지. 평화롭게 누운 여인의 이마에는 찌푸린 골짜기가 없지. 모든 일을 절망보다는 희망으로 읽어내는 사람에게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가을은 복이 있나니. 아이들이 태어나면 반드시 숲을 찾을 것이네. 아버지인 숲을 찾은 아이들은 생명과 평화의 땅을 약속할 거라네. 나뭇잎인 아이들. 나뭇잎인 시인들.
시인 다니카와 타로의 책 <시를 쓴다는 것>을 아껴 읽었네. “뭔가를 쓰려고 할 때는 가능한 한 제 자신을 텅 비우려고 합니다. 텅 비우면 말이 들어옵니다. 그러지 않고 내 안에 말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판에 박은 표현으로 끌려가 버려요….” 집필을 거부하는 일은 때로 텅 비우는 시기이기도 하겠네. 정의를 위해서, 침묵의 시위로 글쟁이들은 때로 절필을 하기도 해. 예비비 44억원을 고스란히 통장에 넣어준대도 학자가 양심을 판 글을 쓸 수는 없는 법이지. 나뭇잎이 지는 거룩한 일에 동참하는 마음들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웠다네.

나도 신간을 내지 않은 지 벌써 십년도 넘었네. 많은 글을 쓰고 또 버렸다네. 글을 버리는 일은 마치 나무가 잎을 버리는 일처럼 장엄한 경험이어서 세월을 그저 가을로 여겼지. 꼭 게을러서만은 아니었어. 봄이 가을로 가듯 문장마다 깊어지고 싶었어. 재기로 넘친 산만하고 난잡한 글. 독자의 환심을 사려는 글. 누군가 비위를 맞추는 글. 거짓으로 꿀을 바른 글. 알량한 고료나 명예를 위한 따위가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날 나뭇잎의 글을 소원했네. 욕망을 비운 진실한 글들은 이 지루한 싸움에서 결국 승리의 월계관을 가져올 것이라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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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語の資料:[여적] 립스틱에서 도시락으로

출처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0052036355&code=990201
립스틱과 미니스커트, 넥타이 등은 과거 불황에 잘 팔리는 대표적인 상품이었다.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면 화장품 구입을 줄이기 마련인데, 최소 비용으로 화장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게 립스틱이기 때문이다. 원단이 적게 들어가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미니스커트도 불황 때 많이 팔렸다. 새 양복을 살 형편이 안되는 남성 직장인은 넥타이만 바꿔 새 차림처럼 꾸밀 수 있었다. 특정 상품이 정부가 발표하는 경제지표보다 더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지표 역할을 한 것이다.
 
시대에 따라 불황 징후를 나타내는 체감지표도 바뀐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 8월 편의점 소매판매액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36.9% 늘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판매액은 각각 5% 넘게 줄었다. 기획재정부가 추석대목 매출을 비교한 결과에서도 편의점 매출은 전년에 비해 52.3% 급증했다. 편의점 프랜차이즈 상장사에 대한 증권사 보고서도 호의적이다. 유안타증권은 BGF리테일(CU)과 GS리테일(GS25)의 목표주가를 각각 상향하고, 매수 의견을 냈다. 앞으로 도입할 인터넷은행의 거점이 되는 등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역설적이게도 편의점 매출 증가는 소비 회복이 아니라 불황의 대표적인 징후이다. 편의점 매출은 도시락, 샌드위치, 음료 등 가공식품과 담배가 86.5%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도시락 매출은 연간 50% 안팎씩 늘고 있다. 편의점 도시락을 사먹는 사람을 일컫는 ‘편도족’이 크게 늘었다는 뜻이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돈 없는 취업준비생과 학생 등이 삼각김밥, 컵라면, 도시락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불황형 소비유형이 자리 잡은 것이다.

과거 베이비붐세대의 은퇴 후 창업 1순위 아이템이었던 빵집과 치킨집은 쉽게 창업할 수 없다. 빵집은 초기 자본금이 3억원 이상으로 많이 든다. 치킨집은 3만6000곳에 이를 만큼 포화상태다. 유안타증권은 편의점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어서 예비 가맹점주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본사와의 불공정한 계약과 낮은 이익률, 과도한 노동시간 등으로 가맹점주들이 잇따라 자살했던 게 불과 2년 전 일이다. 가맹점주라고 만만한 게 아니다. 이 모두 편의점이 호황인 사회의 그림자다.

<안호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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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語の資料:[한국에 살며] 물으면 안 돼요?

출처 한국일보 인터넷판 2015년 8월 21일 http://www.hankookilbo.com/v/62ff6eedbb0d4f33a98934f29c84f56b

한국인과 처음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 당황하는 외국인들이 많다고 한다. 사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대화를 나누는데 내 나이, 종교, 결혼 여부, 가족 구성, 출신학교, 최종학력, 고향 기타 등등 온갖 개인정보를 묻기 시작한다. 대답은 하지만 처음에는 힘들고 불쾌하게 여겼다. 처음 만난 모르는 사람들에게 왜 그런 것까지 밝혀야 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되었을 때 방송을 보다가 놀란 적이 있다. 거리에서 행인들을 인터뷰하는데 이름과 나이가 그냥 자막으로 막 나가는 거였다. 한국에는 동명이인이 많기 때문에 구별하기 위해서라는 의견도 있는 듯 하지만 인터뷰에 응하는 쪽 처지에서 그런 것까지 생각했을 리는 없다. 어쨌든 인터뷰를 당한 사람이 질문에 별로 거리낌 없이 자신의 나이를 구체적으로 밝혔기 때문에 나이가 표시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개인정보를 밝히는 기준에서 한국인들은 외국인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일본은 섬나라이며 원 나라가 일본을 침공한 외에는 외침을 받은 역사가 없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상대방을 알아가는 것보다 오히려 내 정보를 어디까지 줘도 되는지를 중요시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본 모습을 쉽게 보여 주려고 하지 않는 일본인의 이면성과 통할 수도 있다.

한편 한국의 경우 서로를 알아야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빠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맞는 말이다. 지금은 나도 한국인에게 이것저것 개인정보를 묻는데, 실례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기소개를 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필하는 모습을 보면 참 서양적인 것 같기도 하다. 일본의 경우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 제3자의 평가를, 즉 타인이 인정해 주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인들은 일본인에 비해 자기 주장이 센 것처럼 보인다. 잘못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명쾌한 부분이 있다.

일본인 특유라고 할 수 있는 서서히 상대방을 알려는 사고 방식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답답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다. 내가 아는 한국인이 일본에 가서 일본인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다고 했는데, 그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일이 있었다. 일본인 친구끼리 친한 그룹이 있었는데 한국인 친구가 그들의 나이를 물어봐서 서로의 나이를 처음 알았다는 것이다. 그는 친한 친구끼리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수수께끼 같았다고 했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각각의 개인정보를 몰라도 교제하는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이를 알아서 인간관계에 선을 긋는 일을 싫어했다고 볼 수 있다. 하긴 나도 2년 넘게 하숙집 주인 아줌마의 이름조차 모르고 살았다. 우리는 ‘아줌마’라고 부르고, 외부 사람들은 ‘○○엄마’라고 불렀다. 하숙집 주인 아줌마의 이름을 몰라도 생활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고, 결국 주인 아줌마의 실명을 모른 채 하숙집을 떠났다.

직접 묻지 않아도 한국에서 이름 석자와 주민등록번호만 알면 웬만한 것들은 알 수 있다고 한다. 우리 같은 외국인도 외국인 등록번호가 있으며 그 번호가 없으면 한국에서 살기에 상당히 불편한 일들이 많다. 일본에는 주민등록번호 같은 제도가 없고 자동차운전면허증, 국민의료보험카드, 여권, 학생의 경우 학생증 등 공식적으로 신분증으로 인정되는 종류가 많다. 그런데 일본도 2016년도부터 국내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등록번호를 부여하는 ‘마이 넘버 제도’가 시행된다. 탈세나 사회보증제도, 재해시의 신분 확인 등에만 한정하여 사용한다고 일본 정부는 발표했으나 ‘국가에 의한 국민 관리’라고 반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개인정보를 국가가 관리하는 법에 대한 반발인데 주민등록번호 선진국인 한국에서 그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한국에서 살아가려면 한국식을 익히는 것이 결국 편하게 사는 방법이 아닐까? (쓰치다 마키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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